• 김진우 목사

Morning QT 시편 49

최종 수정일: 2020년 11월 13일


1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9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10  저가 보리로다 지혜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말을 칭찬하리로다 (셀라) 

14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의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 아침도 여러분의 삶에 건강과 행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부 입니다. 좀 더 직선적으로 말하면 돈이죠.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필요가 제때에 충족되어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돈은 우리 삶에 많은 것들의 필요를 충족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은 예전부터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돈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물질과 부가 명예와 존귀와 연결되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관련되어 있듯 말해 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물질과 부가 부질없는 것이라고 이야기 되어 질 때도 자주 있습니다. 그럼 어떨 때, 우리는 돈을 축복으로 봐야하고, 또 어떤 때는 이것이 축복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까요? 이 아침에 시편 49편의 찬양에서 찾아 보기 원합니다.


오늘 물질과 부, 곧 돈이 인생에게 있어 축복이 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시편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돈이 사람에게 축복이 아니라, 해가 되는 때는 그 돈이 사람의 의지하는 대상이 되고, 자랑하는 것이 될 때입니다. 6절에 시편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돈이 많을 수록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사실 많은 것을 우리는 이 땅에서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이 많을 수록 초조함이나 두려움이 사라짐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함 속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시편이 경고의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앞절 5절의 상황이 내게 닥쳐 왔다고 생각해 봅니다. 내가 환란의 날,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날을 보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상황에서 나의 금고와 은행장고가 돈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행인 일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돈이 의지할 만한 것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오늘 6절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내 재물을 먼저 의지하게 되는 마음의 상태를 말씀이 불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축적된 제물속의 부유한 삶을 살고 있을 때, 제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가장 곤란한 문제를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물론 재물이 있는 사람이던 없는 사람이던, 재물에 마음을 두고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가난한자 부한자 모두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려운 상황이 오면 당연히 더 자신의 재물을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위험이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


돈은 우리의 육신의 복지를 증진 시킬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영혼의 복지 까지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은 것일 겁니다. 우리는 육신을 위한 보험을 한 두개 씩은 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곤란한 일이 터지는 떼를 대비하기 위해 매달 돈을 지불하여 위험에 대비합니다. 그런데, 영혼의 복지는 재물의 준비로 되지 않음을 말씀은 노래합니다. 육신에나 적용되는 재물의 능력이 과대하게 의지되어, 영혼의 문제에 대한 초조함을 감소시킵니다.


성경은 구속받지 못한 영혼의 상태를 항시, 환란, 곤경에 빠진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구속 받아야 하는 포로의 상태, 목마르고 배고픈 빈곤의 상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 영혼의 상태와는 반대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으로 영혼을 잘 되게 할 수 없다 이것이에요. 궁극적으로 나의 영혼을 구출해 내야 내가 가진 재물이 헛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구속 해 낼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속이랑 정당한 값을 주고 빼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보석금을 주고 풀려나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충분한 금액이 있어야 우리의 영혼이 구속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재물로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다소 흥미로운데 8절을 봅니다.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번역이 희미하게 되어 있는데, 원래는 그 영혼의 구속값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비싸서-- 라고 명시 되고 있습니다. 그 값이 어마어마 해서 누구도 치룰 수 없다 이말입니다.

사람의 값이 얼마일까요? 가격으로 칠 수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이 세상에서는 사람의 가격이 늘상 매겨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봉과 나이와 건강과 학력과 재산등을 맞춰진 공식에 집어놓고 빼면, 사람의 가격이 대충 나옵니다. 그리고, 종종 그 가격으로 여러상황에서 돈이 오고 갑니다. 합의를 볼때도 보험금을 추산 할 때도, 값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성경은 연봉과 나이와 건강과 학력과 재산에 아무 상관없이, 한 사람의 영혼의 가격이 측정될 수 없을 만큼 비싸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명의 구속은 영혼의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 영혼을 값을 치루고 빼내 오는 보석금, 합의금, 구해내는 금액이 "너무 귀하며 - priceless" ---가격으로 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창출해 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측정되지만, 성경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모든 영혼의 값이 재물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극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격을 다 지불하고 남이든 자신이든 구속할 만한 부를 가진 이는 없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이렇게 값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값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우리의 생명에 걸려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 말을 듣기는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심지어 믿어지기 까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영적 현실이고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그 귀한 영혼이 저당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값을 치루고 누군가 꺼내줘야합니다. 세상보다 더 큰 엄청난 부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가진 조그만 재산과 부에 의지하여 나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허황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말씀이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우리를 우둔하다라고 합니다. 10-11절 이렇습니다.

10  저가 보리로다 지혜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결국 그 재물이 타인에게 끼친다,-곧 남의 것이 되고 만다. 나의 영혼을 위해 쓸 수 있는 재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한테 결국 나의 영혼을 털리고, 내 영혼은 죽음의 소유가 됩니다.

내가 거하겠다고 자랑했던 집과 터, 심지어 나의 이름을 새겨놓았던 집과 비석을 세워놓았던 전토가 나를 도와주기는 커녕, 남의 것이 되버립니다.

요새 지나가다 보면 새로 지은 멋진 집들에 자신 또는 가족의 이름들을 새겨놓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집 대문에 문패가 걸려있었는데, 이제는 집 외벽이나 담에 종종 이렇게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마음에 어떤 동경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름을 붙치면 자기의 전유물, 소유라는 감정의 연대가 생깁니다. 그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염원이 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영혼을 구속하지 않는 이상, 내가 가졌던 모든 다른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영혼의 복지를 해결하지 못한채 죽는 사람들의 끝을 시편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Psa 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의 정점을 찍었던 인생도 끝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라는 말에 우리는 공감하기 싫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훌륭한 위인들의 삶을 듣고 동경하며 자라 왔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다 포장 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영혼을 구속하지 못하고 죽었던 모든 사람의 끝이 들판에 버려져 무덤없이 죽어간 짐승과 같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14절 보면 이렇게 또 표현합니다.

Psa 49:14  양 같이 저희가 음부로 내려가나니 사망이 저희 목자가 될 것이라. (번역)

양은 사리 분별을 못하는 무능함의 대표인 동물입니다. 그를 돌봐주는 목자가 없으면 얼마 못가 죽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무능력 끝판의 동물입니다. 그런 무능력하고 우둔한 양이 우리이고, 우리는 모두 누구를 목자로 삼아 이끌림 당하고 있느냐 하면 사망이라고 합니다. 사망이라는 목자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음부입니다.

그들의 형상이 음부에게 삼킨바 되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높은 집들이 없으리라 (14절 번역)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집에서 거하였다 한들,, 이제는 땅의 가장 낮은 감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 영혼을 구속해 내지 못한 모든 무능력한 인간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은 누군가 부자가 된다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16절) 그의 집의 화려함이 증가할 때도 부러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 17절 그가 죽을 때, 아무것도 그가 가져갈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모든 부도 그와 함께 내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암담한 것은 그들이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 (19절) 너무나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간 모두는 (mankind) 아무리 존귀한 가운데 있었다 하더라도 이해함 없는 존귀함 이라고 말합니다. 동물과 죽는 것이 다를 게 없다고 마지막 절에 다시 한번 노래합니다.


Psa 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하지만 오늘 시편은 노래합니다. 비판하기 위해 노래하는 것보다, 그런 비참한 가운데 있는 인생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재물로 누구도 그의 영혼을 구속할 능력이 없건만, 그 일을 해 내신 이가 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한절이 모든 가사의 암울함을 상쇄시킵니다. 15절 이렇게 노래합니다.


Psa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값을 치루실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빼주시리라 믿고 희망하고 거기에 안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자인 사람들을 그렇게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모두가 처한 환경은 동일합니다. 재물이 있던 없던 모든 사람은 지금 저당잡혀 있는 인생을 살고 있고, 사망에 이끌린 암울한 삶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종착역은 음주입니다.

하지만, 나를 영접하실이가 도중에 바뀔 수 있습니다. 사망이 나의 목자였다면 이제, 생명이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럼 음부가 아니라 나의 종착역은 하늘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것을 찬양합시다. 같이 노래합시다.

조회수 27회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