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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우 목사

성경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무어라 해도, 바로 성경의 내용이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곧 거짓이 없는 진리의 주장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위에서,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모든 성경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이 주장하는 바의 모든 내용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던지, 아님,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른지 상관없이 그것은 다 진실임을 인정하는 것임니다.

믿지 못하는 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당히 비논리적이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얘기하는 내용이 90%가 이루어지고 사실임이 밝혀졌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 나머지 10%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인에게 있어, 성경이 무오하며, 절대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근거가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성경이 얘기하는 창조의 사건,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을 둘러싼 국가들과의 이야기,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 아들 예수를 통한 성취, 그리고, 그의 교회의 시작과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의 이야기와 더 이상 악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의 메시지.. 이것들을 우리가 왜 믿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성경을 믿음으로써 내 삶이 변화 받았기에, 나는 그것이 진리이다 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적혀졌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무궁무진 합니다. 저도, 성경을 통해, 삶이 변화됐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된 삶 자체가 성경의 모든 내용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좀 약할 것입니다. 변화된 삶이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이고, 무신론자들도 얼마든지 다른 책들을 통해, 가치관과, 삶의 질이 변화했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은 성경의 진실됨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고 합니다. 신앙심있는 대답이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변론이 되지는 못합니다. 무엇을 믿는 다는 것이 곧 그것이 진실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라는 것과, 믿음을 타당성있게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벧전 3:15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셋째, 저는 이런 변론을 자주 강단에서 듣곤 했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실되다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이 그런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우리가 왜 성경이 진실됨을 믿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3:16

 

(딤후 3: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물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됨을 믿고, 그 안에서 서로 진리됨을 강조하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성경이 진리됨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성경이 스스로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 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순환 논증의 오류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이것도 그렇게 적합하지 못합니다.

넷째, 성경의 진실성으로 성경의 고유성과 내적 일관성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의 66권의 책들이 다른 저자들과 다른 시대에 쓰여졌고, 심지어 다른 언어로 쓰여졌지만, 고대 어떤 문서나, 문건보다도 그 안의 주제와 소재, 방향, 해답은 놀랍게도 매우 일관적입니다. 40명의 다른 작가들이 2000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적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묶음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하나님의 법도와 계획,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 그리고, 그분의 깊은 마음까지 일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책은 이것들을 다른 색깔들로 매우 독특하게 개성있게 대하고 있지만, 하나의 목소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일관성이라 하면, 내용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보존성에서도 매우 일관적입니다. 매우 오래된 고대 문서라 수천세기에 걸쳐 다시 적어지고 손으로 복사 되어 왔지만, 방대한 양의 문서들이 현재까지 발견되었고, 그 오랜 세월동안 그 문서들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 비평가들은 적어도 성경이라는 문건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인정하진 않아도, 고대의 문학서 중에서 아주 고유함을 인정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정확히 그 내용이 전술되었음을 인정합니다.

다섯째, 성경의 사실성을 외적인 증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고학은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지명과 장소들의 사실성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에서 기적으로 무너진 여리고성이 한때는 허무맹랑한 신화라고 그랬지만, 20세기 들어, 여리고 성을 찾았고 그곳이 성경에 언급된 사실에 가깝게 무너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가나안 땅의 성들도 너무 오래전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학자들이 그랬지만, 고대 문건에서, 무역상들이 이용했던 길에 있던 성들의 이름으로 언급됨으로 실제로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나오는 왕들의 실제 존재성도, 계속 밝혀지는 고고학적 유물로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은 성경의 주장이 사실임을 어느정도 뒷받침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고학이 모든 것을 다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바벨탑을 찾아낸 것도 아니고, 노아의 방주를 찾아 낸 것도 아닙니다. (물론, 찾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학계에서는 인정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고학 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무리가 있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확실하지 않는 잣대를 가지고, 무엇이 확실하다라고 밝혀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섯번째, 우리는 성경이 진실되다라고 성경의 성취 되어진 예언을 통해 믿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예언들 중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 쓰여질 때에는 저자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지만 후세대에 사실로 일어난 일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 같은 곳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세계정세를 그리고 있는데, 특히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제국의 성립을 여러가지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읽었으면 알 수 없었겠지만, 후대사람들은 예언이 성취되고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내용들입니다.

또한 선지서들 중에는 앞으로 일어날, 핵전쟁이나, 미생물전, 세계 정보화,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세계통합, 인간의 기계화, 미사일전 등, 과거에 살았으면 알 수 없었을 내용들이지만 현재에 들어 가능하게 된 것들이 많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아도 과거에 쓰여진 성경의 내용들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라는 것은 그것이 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에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영역이지만, 성경안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어 그것들이 미래를 예측했고 앞으로도 예측할 것이다라고 하는 논증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바이블 코드 라는 부제로 찾아 보시면 됩니다.)

이것들을 모든 합치면, 과거의 어떤 책들보다도 성경은 더 진실되고 믿을 만하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로 손색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것들로 성경이 100% 진실임을 밝히기는 여전히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엇이 진실임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입증하냐, 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삼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어떠한 것이 100% 참이냐 결정할 수 있냐 이것이 쉬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면, 그것은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인데, 하나의 절대적 기준을 검증되지 않은 다른 기준으로 참이다 말하는 것은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담 성경이 진실임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성경의 전체 적인 내용을 진실로 받아 들일때, 우리의 세계관이 논리적으로 성립이 된다.

 

매우 주관적인 해석같아 보이지만, 사실 매우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창세기에서 나타났듯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했습니다. 신약의 창세기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을 보면, 말씀이 하나님이셨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로고스, 곧 말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고, 논리라고도 해석이 되는 이 단어는 바로, 우리 세계관의 유일한 기준점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하는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있고, 의미가 있으며, 소통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계의 창조 바탕에 말씀, 논리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로고스, 논리의 범주 안에서 진행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법칙을 가지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일관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하나님을 통해 인간들과 세계 역사속에 펼쳐지는 성경의 내용들은 모든 것들의 가장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점의 의미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의 구축점으로 이 성경이 손색이 없고, 그것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성경이 100% 진실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가 과거의 형태로 계속 진행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곧 예수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시작과 나중이라.

 

우리는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근본 바탕의 의미에서). 갑자기 세상이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그것을 의미있게 하는 부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부정하고 긍정하는 것, 어떤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할려고 하는 이 모든 수고도, 로고스라는 바탕이 있기에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의미있는 자유는 오로지, 로고스, 창조주, 그리스도 예수,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의 은혜와 공의의 세상안에서만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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