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Psa 62: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Psa 62: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Psa 62:4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
Psa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Psa 62:6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Psa 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Psa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Psa 62:9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Psa 62:10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Psa 62:11 하나님이 한 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Psa 62:12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찬양으로도 많이 부르는 아주 익숙한 시편의 말씀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여기서 바라라 -- 하나님만 바라라 라는 번역을 가지고는 시편기자가 의도하고 있는 바를 놓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바라라 라는 말은 종용하다 라는 말입니다. 기다리라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누구를 바란다라고 하면, 거기에 상당한 움직임과, 능동성을 생각합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 하지만, 오늘 바라다 라는 말에는 침묵함이 들어 있습니다. 멈춰섬 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잠잠히 라는 말을 걸어 둔 것입니다. 마치 고요한 물이 한 곳에 멈춰 있는 상태,, 바로 이것을 오늘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빗대고 있습니다. 2절을 읽어봅니다.
Psa 62: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요동치 아니함. 5절과 6절에서도 같은 말이 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편의 저자는 62편 전체에서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 자신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나의 움직임을 모두 제하여 버리고 그대로 서 있는 나의 영적 모습,, 이것을 오늘 좀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수련회나, 여름성경학교때, 자주 했던 게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게임이 있었죠.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멈춰야 되는 게임.. 둥그렇게 서서, 이런 노래를 하죠.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눈도 감지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마… 그러다 갑자기 휘슬에 멈춰섭니다. 우리가 이 게임을 해 봤지만,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게 쉽습니까? 술래가 가까이 와서 막 옆에서 웃깁니다.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조롱스런 말을 하기도 하고, 넘어뜨릴 것처럼, 손댈 것 처럼, 위협도 해 봅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죠. 그러다, 결국 실패한 기억도 있을 겁니다. 1분을 그대로 가만히 정지해 있다는 것이 힘듭니다. 남이 옆에서 자꾸 방해하고 힘들게 하면 움직일 수 밖에 없어요.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오래전에, 중학교 때 버스를 타고 오는 데, 화장실을 급하게 가고 싶은 겁니다. 집에 도착하려면 열정거장이 남았는데, 살짝 가고 싶은게 아니라, 심하게 가고 싶은 거에요. 버스 안은 막 흔들리죠. 그때부터 제 몸이 비비 꼬이는 걸 멈출 수가 없어요. 왜? 참아야 하니까. 내가 해야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을 당장 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죠. 당장 해소해야 되는 생리적 현상이 해소되지 못하니까, 그때부터는 온 몸이 꼬이고, 앉아 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하고, 허리에 손을 감싸서 쥐어 짜기도 하고, 그리고, 버스에 내려서 집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오리걸음으로 간 기억이 생각이 납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여러분도 한두번은 경험한 일 아닙니까?
사람은 자신의 기본적인 내부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 움직임이 심해집니다. 우리가 잠잠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의 채워지지 않는 필요일 수도 있고, 주위에서 나를 자꾸 흔들어 대니까, 위협하니까, 가만 나두지 않으니까, 잠잠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다 이해 됩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의 기자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 시는 압살롬에게 반역당해 쫓김을 당할 때 적어진 시라고 합니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한 시라도 빨리 압살롬의 추격에서 달아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내부적으로 다윗은 심각한 아이러니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을 반역한 아들에게 잡히면 죽겠지만, 그렇다고, 그를 대적하여 싸우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만 됩니다. 왕에게 반역한 자라면 법이 죽이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생명은 지켜야 하는데, 그럴러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은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다윗의 마음 안에서 얼마나 갈등이 심했을 까요? 안팎으로 그를 세차게 흔들어 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늘, 자신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란다고 합니다. 아니 지금 잠잠할 여유가 있습니까? 기다릴 시간이 있나요? 오히려 타종교에서 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이런 것은 잘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잖아요. 욕구가 있고, 감정이 있고, 그 욕구와 감정이 치솟을 때가 있잖습니까? 우리는 해탈하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도를 수련한 것도 아닌데, 자신은 잠잠히 하나님을 이런 내적 외부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요동치지 않는 고요한 물처럼 기다릴 수 있냐 이겁니다.
저는 그 답을 이 시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에서 찾습니다. 1절에 나와 있구요, 2절에 나오고요. 4절, 5절, 6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절에도 나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어떤 단어인지.. 찾아 보셨습니까? 오직이라는 단어입니다. 한국번역판에는 오직이 2절과 6절에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오직이라는 말이 총 6번이 나옵니다. 그것도 각 절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1절을 다시 읽으라 하면 이렇게 됩니다.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2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4절, 오직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 뜨리기만 꾀하고,, 9절, 오직 천한자도 헛되고, 높은자도 거짓되니, 12절 중에 여섯절이 오직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왜 오직이 답이냐,, 오직은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이야기할 때, 오직을 씁니다. 오늘 저자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때, 오직을 쓰고 있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시라, 2절과 6절에 그렇습니다. 또한 저자가 세상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오직 그들이 그를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오직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4절과 9절에 그렇게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직을 쓰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요..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1절과 5절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무슨 말이냐,, 확실함이 있는 자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함이 있는 자이죠. 세상에 대해 확실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것이 부족함이든, 그것이 강함이든, 그것이 남을 향한 관점이든 그에게 확실함이 배여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에 이와 같은 확실함이 있다면, 내 내부적 상황과 외부적 요인에 따라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이시간 기도하실 때, 우리의 관점에 올바른 확신이 정립되도록, 기도합니다. 의심은 물러가고, 여러 옵션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의지하는 한결같은 마음 주시옵서소. 한결같은 마음에 흔들리지 않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같이 기도할 것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나의 영혼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점에 모두, 오직이라는 확신을 붙일 수 있길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이 구원이시다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시다. 벌써 느낌이 틀립니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은 속임수다 가 아니라, 사람은 오직 입김이며, 인생은 오직 속임수다,, 벌써 삶의 허망함을 바라보는 관점이 틀려집니다. 오직을 넣었을 뿐인데.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가 아니라,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오직을 붙임으로, 잠잠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영혼의 모습이 오직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하나님만 바라고 있는 잠잠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시간 기도하실 때, 우리의 관점에 올바른 확신이 정립되도록, 기도합니다. 의심은 물러가고, 여러 옵션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의지하는 한결같은 마음 주시옵서소. 한결같은 마음에 흔들리지 않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두번째, 우리 교인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경제적으로 지금 많은 타격이 있을 줄로 압니다. 어려운 시기인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오히려 체험할 수 있는 조용히 잠잠히 넘어갈 수 있는 위기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세번째, 2021년 다가오는 새해를 위해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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