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우 목사

시편 61편 아침 묵상: 하나님을 그리


Psa 61: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Psa 61:2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Psa 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Psa 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Psa 61:5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Psa 61:6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Psa 61:7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Psa 61: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할렐루야 성도님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이 확장되길 기도합니다. 오늘 노래에서 우리가 주목하기 바라는 것은 이 시편의 기자, 곧, 찬양과 기도를 올리는 이 신앙인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그려 보라고 한다면, 영혼의 도화지에 하나님을 그릴 수 있다고 친다면, 여러분은 몇가지 색깔의 물감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묘사하겠습니까? 내게 하나님을 그릴 수 있는 영혼의 붓과 물감이 있다면, 하나님을 무엇에 빗대어 그려보겠습니까? 어떤 색깔로 그려 보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나와야 되는데, 밋밋하게 생동감 없는 우중충한 그림이 나올까 솔직히 저도 걱정이 됩니다. 오늘, 이 시편의 저자가 하나님을 여러 가지 색깔로 그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위치를 그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 같은 외로운 자신의 모습, 고향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어떻게 된 건지 너무나 멀리 떨어지게 된 자신의 신세를 땅끝에서 홀로 선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애타는 모습이에요. 아마도 탁하고 어두운 색깔로 자신을 표현 하겠죠.. 하지만, 이내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양한 색깔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먼저 그는 바위를 그립니다. 자신보다 높은 반석- 나보다 높은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을 그립니다. 반석하면 떠 오르는 것이 광야 시절, 쪼개진 반석에서 생수를 흘려 보냈던 바위가 있죠. 흔들리는 세상에서 기초가 되시는 하나님, 높은 바위 고지대가 되시어 나를 들어올리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시는 바위, 내가 목마를때, 기꺼이 쪼개지어 나의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 투명하고 강인한 색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그 바위에 빗대어 그립니다. 두번째, 하나님을 피난처로 그립니다. 다윗이 숨어지냈던 동굴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숲속 깊숙한 곳을 생각하며 그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곳, 오로지 하나님과 나만 아는 은밀하고, 친밀한 교제의 장소를 그리며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하나님을 강한 산성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적의 어떤 공격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끄덕없는 강한 산성, 산성이 있음으로 산성안에 사람들은 쳐들어 오는 적 앞에서도 여유가 있고,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4절을 보면 주의 장막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집이라 할 수 있죠.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전, 주님은 이동식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하늘 보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인간의 이동식 장막에 와서 거주하신 이유는 오로지 우리와 함께 있기 원하셨고, 우리와 먹고 마시는 친밀한 교제를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장막을 그리워 하는 저자가 사용하는 색감을 우리가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얼마나 주를 사모하는지 우리 맘에도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늘 우리 가까이 있다고 믿고 있음에도, 더 그리워하고 더 사모하는 마음이 이 사람의 그림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리움과 애탐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을 그립니다. 병아리가 그리워 하는 곳은 어미 닭의 날개 품일 것입니다. 아이가 애타게 찾는 것은 어머니의 품안일 것입니다. 오늘 저자가 그리워 하는 곳은 하나님의 날개그늘, 그분의 품안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장소입니다. 그가 간절히 거하길 원하는 장소들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을 모두 거하고 싶은 장소로 색칠하며 그리고 있는 이 저자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내가 거하고 싶은 간절한 장소로 그릴 만큼의 표현력있는 아름다운 영혼이 되길 희망합니다.


연애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같이 있는데도 그립고, 같이 있는데도 더 같이 하고 싶은 상대… 이런 사랑을 우리가 세상에서라도 잠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사랑의 물줄기가 하나님에게서부터 흘러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자는 자신이 땅끝에서 홀로 서있는 고독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애타게 그리워 하고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듯,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 하듯, 하나님과 가깝게 교제하던 그 장소, 그 시간, 그 느낌을 모두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의 심령을 느끼면서 참으로 안타까우면서, 또한 한편으로 너무 부럽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바랄 수 있는 그의 영혼의 순수함과 갈급함이 부럽습니다.


이제 5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우리가 주목하기 원하는 것은 서원이라는 단어입니다. 5절에 자신의 서원에 귀기울여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8절에, 자신의 서원을 매일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겠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도 저는 시편의 기자가 부럽습니다. 서원은 자신을 묶는 행위입니다. 결혼 서약을 할때, 서약이라는 단어와 이 서원이라는 단어가 같습니다. 관계속에서 서로가 묶여짐을 당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관계안에서 모든 자유와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나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 같은 자신의 외로움을 고백하고 있지만, 스스로, 하나님께 서원함으로 가까이 나아가고자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이 서원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고, 다시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다시 자신을 묶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서원은 자신의 자유를 제약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렸던 그 자유를 위해, 그 친밀한 사랑을 찾고자 서원으로 돌파하려는 간절하고 용기있는 시도입니다. //// 여러분, 내가 땅끝에서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의 고통을 당할 때, 우리의 영혼은 어떠한 하나님의 그림을 그릴까요? 우리는 그 위기와 고비를 어떻게 극복하고 재기할려고 노력할 까요?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의 기자가 보여주는 마음의 모습은 좀 더 생생하고 격렬합니다. 간절히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애처로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다시 받고자, 서원을 하며, 그 서원을 매일 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고 하는 꼭 사랑에 빠진 사랑에 목마른 영혼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환란중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나의 영혼의 색감의 종류가 다양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고, 경험하는 폭과 깊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들어갈 수 있는 그 이상의 친밀함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관계를 우리에게 열어 놓아 주셨습니다. 사랑한 경험이 없다면 인생이 사는 데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끝에서 홀로 된 인생에게도, 세상이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공유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열어 놓아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기도할 때, 내 영혼이 색채없이 죽어 있는 시들한 상태라면,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이 시편의 기자처럼, 하나님과 있음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 내 영혼의 피부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그 따뜻하고 끈끈한 정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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