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우 목사

시편 63편 아침 묵상: 광야의 시기를 버티는 방법

최종 수정일: 2021년 7월 19일


Psa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Psa 63: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Psa 63: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Psa 63: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손을 들리이다

Psa 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Psa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Psa 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Psa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Psa 63: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Psa 63:10 칼의 세력에 붙인바 되어 시랑의 밥이 되리이다

Psa 63: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오늘 시편의 제목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여러분 광야라는 장소는 성경에 늘 등장하는 주요 소재입니다. 광야를 지난다는 말은, 시험의 시기이고, 삶이 굉장히 고달프고 지친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는 내가 즐겼던 모든 편의함이 박탈당하고,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걱정이 될 수 가 있습니다. 거기는 먹을 것도 희귀하고, 거할 것도, 마땅치 않으며, 마실 물이 보장되지 않는 곳입니다. 길이 없으며,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누가 척박한 광야에 살고자 하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늘 신앙인들이 광야를 지나가는 삶을 보여줍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광야 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잘 되던 사업이 안 되었을 때, 막막합니다. 평안한 것 같던 가정에 불화가 찾아오고, 소중했던 관계, 내가 안락함과 쉼을 얻었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는 막막한 광야를 봅니다. 갑자기 건강이 문제가 생겨도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없이 누리고 있던 좋은 것들이 하나 둘씩 내 삶에서 빼앗겨 질때, 푸른 초장이 광야로 변해 버리는 느낌일 겁니다. 그럼, 광야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광야를 즐길 것입니까? 광야를 헤져나갈 것입니까? 광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땅을 개간하고, 광야를 내 편으로 만들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광야를 벗어나고자 사람의 도움을 구하고, 물질의 도움을 구하고, 계획을 세우고, 많은 시도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광야에서 주저않고, 포기하며, 삶의 끈을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긴 시간을 광야에서 도망다니는 신세였습니다. 1절에 나온 것처럼, 당장 마실 것이 문제였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문제였고, 거할 곳이 문제였습니다. 하루 하루 가 걱정이 없는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오늘 시편 63편의 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불편함과 그의 긴급한 필요를 우리에게 시로써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얻는 다해서 광야에서 살아남는게 아니였다는 겁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오랜기간 살아 남았을 뿐 아니라, 그 광야의 기간을 나오면서, 왕이 된 케이스입니다. 왕이 될 자격과 조건을 다윗은 광야에서 얻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광야의 기간 없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됐다면, 사울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광야는 다윗에게 있어 연단의 시간이지만, 우리는 그 연단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다윗을 왕으로 만드시기 위한 연단입니다.


왕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왕이라는 자질을 만들기 위해서 광야가 주어집니다. 찌끼를 솎아내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간, 이것이 다윗에게 광야의 기간입니다. 이 사실을 다윗이 광야에서 몰랐을 까요? 지금 광야의 연단이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자신을 왕같은 자로 연단하시기 위해, 베푸시고 있는 하나님의 배려이고, 시험의 기간이라, 늘 생각하고, 버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곳이 광야입니다. 내 피부로 와 닿는 광야의 고통은 내가 이 시기를 통해 더 낳아질 거라는 긍정적 미래를 붙들고 있다 한들 매일 날 부서뜨리고 넘어뜨리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럼, 다윗이 어떻게 버텼느냐,, 어떻게 그는 날마다, 조금 더 위대하고, 더 지혜롭고, 더 고상한 왕의 모습으로, 광야에서 변화해 갔느냐, 이것을 우리가 63편에서 좀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12절 전체의 말씀의 요지를 1절에서 찾아보면 됩니다. 읽어봅니다 Psa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 한절에서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에 우리가 밑줄을 그어 봅시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오늘 시편 63편 전체의 내용은 다윗이 광야에서 주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광야에서 주를 찾음으로 광야의 기간을 버텨내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합니다.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물을 간절히 찾는 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주를 찾고 있다라고 심지어 그의 육체조차 주를 앙모한다라고 고백합니다.


잘 아시지만,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한국 남자에게 군복무는 그야말로 광야입니다. 지금은 2년 미만인 걸로 아는데, 2년으로 치면 짧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군대에 복무하는 사람은 절대 짧지가 않습니다. 광야에 들어가 본 사람은 그게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절대 짧지가 않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군대에 막 들어간 보통의 사람이 간절히 바라보고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또 다른 훈련 뛰는 날? 아니겠죠, 외박나가고 휴가나가는 날, 뭐 그럴 수 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바라고 찾는 것은 이 들어오게 된 군대에서 하루빨리 완전히 나가는 날입니다. 아직 2년이 남아 있어도 막 들어온 사람에게 조차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나가는 날입니다. 그런데, 나가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무리 찾고 찾아도, 2년전에 나가는 정상적인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이런 말로 위로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런데, 즐겨지는 사람은 거의 없는 줄로 압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어지는 광야는 대부분 그 기안이 정해져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길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광야는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광야에서 나갈 길을 모색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도 이 광야의 기간이 단축되어지기를 기도 왜 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도, 광야를 버텨내는 방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광야에서 나가는 방법이 아니라, 버텨내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 63편에서 보여지는 다윗의 노하우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를 찾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를 찾는 것.. 그럼, 그 구체적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군생활 동안 그 기간에 몸을 만들고 또 공부를 해서 지성을 쌓아 나오는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서 그 시기를 지나고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 입니다.이 방법대로 한다면, 광야의 시기에서 내가 몸을 만들고 영혼을 만드는 것 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수되고 있는데, 한번 1절부터 8절을 한번 훑어 봅니다. 모두 내가 라는 단어로, 내가 지금 광야에서 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 이게 1절이죠. 또 2절을 보면. 내가 성소에서 주를 바라본다. 그렇죠. 3절을 보면 내 입술로 주를 찬양한다. 4절을 보면 내 손을 들어 주를 평생 송축한다. 5절을 보면 내 영혼이 만족한다 6절을 보면 내가 내 침상에서 주를 기억한다, 새벽에 내가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7절을 보면, 내가 즐겁게 노래한다 8절을 보면 내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른다 … 그리고, 그에 맞는 이유들이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 주를 찾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내 육체가 동반되고, 내 영혼이 동반되는 행위입니다. 나의 지적, 감정적, 육체적 에너지가 하나님에게 집중되서 소비되는 행위입니다. 주를 갈망하며, 주를 앙모하며, 주를 바라보며, 주를 찬양한다. 손을 들고 주를 송축하고, 주를 기억하고, 주의 말씀을 읊조리며 주를 가까이 따른다.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여기서 찾으시면 됩니다. 내 지적, 감정적, 육체적 에너지가, 이런 행위들에 소비되는 일입니다. 거기는 즐거움이 있어야 되기도 하고, 갈급함과, 간절함이 동원되야 하며, 나의 생각과 내 영혼이 모두 쓰여져야 하는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지금 광야의 삶은 내게 당장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를 바라보게 하고,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지, 보이지 않는 주를 바라보며 거기에 내 지, 정, 의 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행위는 낭비처럼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을 나의 삶의 최우선 순위로 놓을 때, 궁전에서 살던 껍데기만 입고 미쳐가던 왕, 사울이 아니라, 광야에서 살더라도, 왕같은 자태와 위엄을 입어가고 있던 다윗같이 변모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는 왕은 궁전의 교육을 받고, 궁전의 음식을 먹고 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도, 다윗도, 심지어, 예수님도 같은 방법을 거치셨습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 2021년 지금이 나의 삶이 광야에 때라고 생각되면,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읍시다. 이렇게 말씀에서 말하죠. Isa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 광야에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이시간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 실천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성소에서 바라보며, 하나님을 위해 내 손을 들고, 내 자러가는 자리, 일어나는 자리 모두 주를 기억하며 주의 말씀을 읊조리는 삶, 하나님과 내가 분리될 수 없는 삶,,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도 모든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 계셔서, 발견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두번째, 어려운 믿지 않는 두 가정이 있습니다. 사업도 힘들고 또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 있는 가정이 두 군데 있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고, 또 도울 수 있는 손길이 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2021년 하나님께 어떤 서원으로 나아가야 할 지 기도합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맞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을 이루며 하나님과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관계를 가질 수 있기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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